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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부 [일본] 일본 지역부 소개
21/07/29 09:37 | KPM |
들어가는 말
 1957년, 김영진/임옥희 선교사를 대만에 파송함으로 KPM의 세계선교역사는 시작된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1972년, 조병철/이금선 선교사가 일본에 파송되어 교포선교가 시작되는데, 이것이 일본지역선교부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본지역선교부는 47년의 역사를 가진 셈이다. 현재 일본지역선교부는21가정 (독신 2명 포함)의 선교사들과 여러 명의 협력선교사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 KPM은 현장중심선교라는 비전가운데 27개의 지역선교부를 현장중심의 12개의 지역부로 전환해서 현지선교사와 현지인을 향한 현장중심의 선교사역을 활성화하고자 선교방향을 정했다. 이를 위해 특별히 12개 지역부에는 연구코디를 두어서 본부의 연구훈련원과 협력을 하면서, 각 지역선교부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연구 개발에 집중을 하려고 한다.
 
1. 지역개요
1.1 일반개요
 1.1.1 지역개관
 일본은 동아시아에 위치하는 일본열도(홋카이도・혼슈・시코쿠・규슈의 주요 네개 섬 및 그것에 부수하는 작은 섬들-6,852개) 및 난세이제도・이즈제도・오가사와라제도 등으로 된 섬나라이다. 이 중 홋카이도・혼슈・시코쿠・규슈의 네 섬이 일본 전체 면적의 97%를 차지 하고 있으며, 섬들이 길게 형성된 나라이기 때문에 열도라고 불린다. 총 면적은 378,000km²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1.7배이다. 이는 다른 G7의 일원인 영국, 이탈리아, 독일보다 더 넓고, 면적 순으로는 세계61위이다.
 
일본은 대한민국과는 대한-쓰시마 해협을 사이에 두고 비교적 가까이(오른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러한 지리상의 이유로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여러 국가들과 크고 작은 교류를 해 왔고, 근・현대에 들어서는 한국의 경제발전의 롤 모델이 되었으며 현재도 한국과 경제・문화적으로 상당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과거 일제강점기라는 수치나 영토분쟁 등으로 인해 정치/역사적인 면에서는 관계가 좋지 않은 점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의 기후는 태평양쪽과 동해(일본해)쪽이 큰 차이를 보인다. 동해 쪽에는 북서의 계절풍에 의해 겨울에 눈과 비가 많으며, 태평양쪽에서는 남동의 계절풍에 의해 여름에 비가 많다. 대륙성기후인 한국과 달리 일본은 해양성 기후이고, 기온의 연교차도 작은 편이다. 그리고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며, 강수량도 많은 편이다. 국토의 대부분은 산지이며 인구는 평야부에 집중하고 있다.
 
1.1.2 인구와 도시화
 일본의 인구는 세계 10위로 1억2,633만명이다(2019년2월1일 현재). 이것은 전년 동월과 비교해 볼 때, 27만명(▲0.22%)이 감소하였으며, 또한 9년 연속 감소 추세에 있다. 한편, 65세 이상의 고령자는 56만1천명이 증가하여 3,515만명이 되었는데, 이는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과거 최고의 27.7%에 해당한다.
 일본의 도시화율은 86%에 달한다. 1920년의 도시화율은 18%였지만, 1940년에는 38%까지 상승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1945년에는 28%로 감소하다가, 1961년의 신도시, 마을 건설촉진법제정 후인 1965년에는 도시화율이 68%로 급속히 확대된다. 그리고 2000년에는 도시화율이 79%가 되고, 2005년에는 86%가 된다. 한편, 일본의 수도권은 관동지방의 1도6현(一都六県)이며, 동경 도를 중심으로 카나가와 현, 치바 현, 사이타마현, 이바라키 현, 토치기 현, 군마 현과 야마나시 현을 포함하는 지역이다. 이 수도권 총인구는 4,393만명이며, 이것은 일본 전국의 30%를 넘는 셈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메트로폴리스 형태이다.
 
일본 국내에는 일본인과 소수의 원주민인 아이누족 및 외국인들이 살고 있다. 법무성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으로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는 256만 1,848명으로, 전년말과 비교해 볼 때 17만9,026명(7.5%)이 증가했으며, 이는 과거 최고에 해당한다. 1위인 중국인에 이어 한국인은 45만663명이 현재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최근 베트남인, 네팔인 그리고 인도네시아인이 증가하고 있는 점이다. 한편 해외에 살고 있는 일본인은 135만1,970명이다(2017년10월1일 현재). 1위는 미국으로 42만6,206명이며, 2위는 중국으로 12만4,162이며, 한국은 10위로 3만9,778명의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공용어로서 일본어가 사용되고 있다.
 
1.1.3 역사
 일본의 공식 국호는 「일본국(日本国)」이다. 이는 특별한 법령을 통해서 이 나라를 「일본국」이라고 하도록 규정한 것이 아니라 일본국 헌법에서 일본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가 모두 일본국이라는 것을 통해 규정하는 것이다. 일본(日本) 이라는 명칭은 8세기경부터 써온 것으로, 그 의미는 「태양의 근원」, 「해뿌리」, 「해맞이」이다. 일본의 동쪽은 태평양이라는 대양이니 예전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라는 의식을 가진 데서 나온 명칭이다.
 
일본의 역사는 크게 고대, 중세, 근세, 근대로 나눌 수 있다. 고대시대는 원시부터 나라시대(708-782)와 헤이안 시대를 포함하는데 한국과 관련된 것은 나라시대때 백제문화가 건너갔다는 설이 있다. 헤이안 시대(782-1190)는 교토로 천도한 후 불교문화의 융성기를 이룬다. 중세시대는 카마쿠라 시대(1190-1336)와 전국시대(1469-1573)가 여기에 속한다. 오다노부나가가 「오니의 난」으로 11년동안의 다이묘간 세력다툼을 승리를 이끈 것이 바로 전국시대이다. 근세는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1573-1596)와 에도시대(1596-1868)로 구성된다. 이 근세 때 호화롭고 웅장한 문화가 발달했으며 오다노부나가, 토요토미히데요시, 도쿠가와이에야스, 3대 영웅이 나타났으며, 이 기간에 조선침략이 있었다. 에도시대는 260년간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였었고 쇄국정책을 택하게 된다. 근대는 바쿠후 시대가 종식되고 천황이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이다. 이 시대는 천황의 이름을 따서 메이지시대(1869-1912), 다이쇼 시대(1912-1926), 쇼와 시대(1926-1989), 헤이세이 시대(1989-현재)로 구분한다. 다이쇼와 쇼와 시대에 한국침략이 또 있었다.
 
1.2 분야별개요
 1.2.1 정치・ 경제・ 사회
 일본은 의회제 민주주의 국가로서 메이지 유신(1868)을 거쳐 입헌국가가 되며,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7년에 현행의 일본국 헌법을 시행하게 된다. 세계대전으로부터 부흥을 이루고, 1960년대로부터 고도경제성장에 의해 공업화가 가속화되고, 과학기술입국이 추진된 결과 아시아 최고의 선진국이 되었고, 미국 다음가는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다(일본은 1968년에 서독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올라선다). 그러나 버블 붕괴후는 전면적으로 후퇴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으로 말미암아 경기 침체를 겪게 되고 중국이 성장하면서 국내총생산은 세계 3위로 떨어진다. 여전히 선진국 대열에 서 있으며, G7 및 G20의 국가 중 하나이다. 1956년부터는 국제연합에 가맹하고, 외교는 국제연합중심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인종, 문화, 민족 측면에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동질적인 민족 집단들에 속한다. 혈연의 유산, 일본 출생, 문화의 공유, 공통 언어 등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전직 일본인 대사로 지낸 가와사키 이치로는 한번 일본인이면 영원한 일본인이라고 스스로 진단하면서, 「일본인의 동질성, 인종과 민족과 국가의 거의 완벽할 정도로 단일성은 대단한 것이다」고 말한다.
 
1.2.2 문화-일본의 세계관
 일본인의 세계관은 일본 문화의 뿌리와 연결고리로 되어 있다. 일본인 외에 동양인으로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일본론으로 일본을 놀라게 했던 이어령 교수는 이념의 세계를 감성으로, 이미지로, 예술로 대치한 것이 일본 문화라고 꼬집어 말하면서 일본인에게는 확실히 무이념주의 일면이 있다고 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일본인은 이념, 그리고 현세를 초월한 이상의 원리를 탐구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치를 존중하지 않는 세계, 이데올르기가 없는 세계에서는 편의주의가 행동의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1.2.3 의식구조
 일본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그들의 의식구조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일본인의 종교의식, 역사의식, 직업의식, 도덕과 윤리의식 등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일본인의 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의식을 말하고자 한다.
 1) 제일주의 의식
   일본은 이미 율령국가 초기부터 우수한 나라라고 자처하고 있다. 1868년은 일본에게 대단히 중요한 해다. 메이지 유신이라고 부르며, 근대 일본의 중대한 출발점이 된다. 이때부터 일본은 서양을 열심히 배우는 학생이 되었고, 서구화가 가장 긴급한 과제였다. 서양의 기술과 학문을 대규모로 그리고 가장 체계적으로 배워 오기 위해 정부가 사절단과 유학생을 파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1891년에 천왕이 그 유명한 「교육에 관한 왕명」을 공표했는데, 이것은 국가 목표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헌신을 강조하였다. 이런 식으로 국수주의가 종교적 열성으로 더욱 무장하게 되고, 일본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려는 헌신적 노력으로 경제대국을 이룩한 것이다. 이러한 제일주의 의식은 섬나라라는 특징과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항상 배타적이고 자기의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2) 집단의식
   일본인처럼 안(혼네)과 밖(다테마에)이 선명하게 구별된 백성을 찾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즉 일본인에게서 안이란 그들의 집단만을 가리킨다. 이런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관심이 있다면 그것은 집단안에서의 자기의 존재이다. 소위 이것이 특이한 그들 만의 집단의식이다. 반면 일본인은 그 집단 밖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적(敵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피 한방울을 흘리지 않고 경제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유일한 나라이면서도 일본은 수만명의 난민들이 바다의 보트 위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이 지상에서 가장 냉담했던 나라였다. 일본인의 집단의식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먼저 내가 집단 속에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의식이다. 그들은 개인보다 집단이 먼저이다. 자기가 불편하고 또 자기에게 돌아오는 몫이 적다 하더라도 집단이 서고 집단이 유익이 된다면 자신의 것을 쉽게 양보한다.
 
 3) 화(和)의식
   이어령 교수에 의하면, 이 일본인의 화(和)의 구조는 쇼토쿠 태자(聖徳太子)때부터 이미 일본 문화를 지배해 온 것이다. 또한 이 화의 문화는 지금까지 일본사회를 움직이는 것이기도 한다. 화 의식이란 주인과 손님이 한 몸이 되는 문화의식을 말한다. 즉 이것은 일본요리의 특성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사이에 벽을 두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각각 일방통행 하는 것이 아니라, 먹는 사람은 만드는 과정을 알고, 만드는 사람은 먹는 과정을 아는 상호 입장의 교환성이다. 또한 일본이 패전의 잿더미 위에서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요인 가운데 우선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도 또한 일본인의 화의식에 있다.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기 자신으로 인해 야기된 불화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일본이라는 울타리 안이 우선이고, 그 울타리 밖은 언제나 차선이다.
 
 1.2.4 종교
 일본의 종교이해는 앞서 언급한 그들의 문화이해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은 종교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공식적으로 800만이 넘는 신들이 있다. 불교, 신도, 기독교 등의 전통적 공식 종교를 제외한 신흥 종교의 숫자도 대단히 많다. 일본인에게는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다. 사실, 일본의 종교인구는 실제 인구보다도 훨씬 많다. 어떤 종교라도 이익이 된다면, 몇 개라도 가질 수 있다고 일본인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본의 대표적 종교인 신도, 불교, 유교 그리고 현대의 신흥종교 순으로 살펴보자
 
1) 신도
   신도는 본래 「가미」(神)에 대한 신앙과 그에 대한 제사의식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토착종교였다. 그리고 신도란 자연숭배 내지 조상숭배로 이루어진 다신교적 원시신앙의 한 형태였다. 원시신도는 집단적 제사의 종교였고, 고대국가에서는 왕을 가리켜 대왕이라고 불렀는데, 7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대왕을 「천왕」이라고 바꾸어 불렀다. 이 때 천황은 하늘의 세계를 주재하는 「천조대신」의 자손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천황은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비롯한 고전을 근거로 해서 절대화되었다. 1889년 황실전범과 대일본 제국헌법이 제정되어 근대 천황제 국가가 확립되었다. 결국 국가 신도는 교파 신도・불교・기독교의 3교 위에 있으며 천황숭배와 신사숭배를 전국민에게 의무화시킨 것이다. 새로운 일본헌법에 의하면 천황은 이제 「나라의 상징이고 국민 화합의 상징이다」라고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은 천황과 신사 등에 대해 각별한 신앙심을 가지고 있다. 신도는 일본 전국에 10만9,937개소에 이르는 신궁과 신사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언제나 나라가 혼란하고 사회질서가 약할 때 지도자의 종교적 카리스마를 필요로 하였는데, 천황이 그러한 기능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2) 불교
   서기 6세기에 불교가 일본에 도입되었다. 이것은 한국의 한 왕(백제의 성왕)이 일본 궁정에 불상, 불경 사본, 예불용 도구를 보냄으로써 시작된 것이다. 6세기 말에 불교는 일본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율령국가의 터전을 닦고 어려서부터 유달리 불심이 깊어 불상 앞에서 합장 배례하기를 좋아했던 쇼토쿠태자가 섭정이 되면서부터 그는 불교를 온 세상에 널리 보급시켜야 하겠다고 굳게 다짐을 한다. 그의 호불적인 태도를 기반으로 하여 불교는 급성장하게 된다. 1868년 막부시대가 무너지고 메이지유신 시대에 들어오면서 일본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는 새로운 국교로서 국가 신도가 등장하여 불교의 요소가 없는 국가 신도를 만들고자 하여 불교를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수년 후 불교는 회복할 기회를 잡고자 국가 신도에 종속하는 호국 불교로서 재생하게 된다. 그러면서 불교는 점차 세속화되는 경향을 현저하게 나타내기 시작한다. 현재의 일본불교는 본래의 사상이나 교리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고, 완전히 일본화하여 무사도를 장식하거나 하나의 미의식을 나타내는 것에 불과하다.
 
 3) 유교
   공자로부터 시작된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윤리라고 볼 수 있다. 야마토국은 5세기경 한반도에 영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한국을 통해서 일본에 이주하였고, 한국인들도 일본으로 많이 이주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시공동체적 규율과 권위에 의존해왔던 일본사회는 유교적 윤리, 정치이론, 법제도, 교육제도를 수용했다. 6세기에서 9세기 어간에 일본에 처음 들어오는 중국의 문물을 배경으로 하여 들어온 유교는 불교에 가려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17세기 중앙집권적인 토쿠가와 막부의 등장과 함께 겨우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유교의 이상은 일본에 와서 변질되었다. 천황에 대해 두말 없이 충성하는 신앙이 모든 다른 덕들, 심지어는 효도보다도 상석을 차치하게 된다.
 
 4)현대의 신흥종교
  일본의 현대 신흥종교는 300개가 넘는다. 이러한 신흥종교중에 어떤 종교는 교리와 관습에 있어서 불교적이고, 또 어떤 종교는 본질에 있어서 절충주의적이어서 신사 신도 뿐만 아니라 민속 신도,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의 요소들을 흔히 무의식적으로 이용한다. 이들 신흥종교들의 특색은 일본인의 마음 깊은 곳에 지금도 살아 있는 샤마니즘적・애니미즘적인 세계관을 움직여 병고침을 실현하여 성공했는가 하면, 아울러 일본인의 관습인 조상숭배를 교묘히 이용해 교리화시켰고 포교 활동 시에도 조상숭배 문제를 자주 거론함으로써 회원확보에 성공을 거두고 있다.
 
 1.2.5 기독교
 1) 가톨릭 선교
 일본에서의 복음운동은 당나라(618-906)와 원나라(1260-1368)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기독교 교리에 영향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일본을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선교사들이 어느 정도 선교에 성공을 거두게 되었던 것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초반에 로마가톨릭 선교사들의 활약에 의해서이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도 로마가톨릭은 매우 조심을 하며 계속해서 일본 내에서 그 활동을 발전시켜 갔음으로 속도는 느렸지만 꾸준히 성장을 하였다. 그 후 20년 동안 교인수는 약6만6천명에서 거의 10만 9천명으로 증가하였다.
 
2) 개신교 선교
 일본의 개신교역사는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다. 페리 함대가 1853년에 일본에 도착했을 때, 일본은 충분한 변화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서양문화의 압도적인 힘이 일본으로 하여금 문을 열도록 압박해 왔다. 1854년 일본은 260년간의 긴 쇄국정치를 풀고 미국과 화친조약을 맺었고, 1858년에는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체결한다. 그리하여 개신교 선교가 1859년 6명의 미국 선교사가 입국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1872년은 일본 개신교 역사에 있어서 신기원(新紀元)의 해였다. 왜냐하면 이 해에 최초의 교회가 설립되었고, 그리고 일본 내에서 장로교와 개혁교회가 처음으로 전도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의 기독교 박해에 대해 외국으로부터 강한 압력이 들어오자 메이지 정부는 1873년2월21일에 기독교 금지령을 해제시켰고, 그 결과로 공적으로 전도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일본 개신교 앞에는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천황제가 있다. 일본과 천황제의 결속력은 일본 개신교가 처음부터 넘어야 할 최대과제이기도 하였다. 일본 제국헌법은 바로 일본 천황제 헌법임을 제1조에서 잘 말해 주고 있다. 즉 제1조는 「대일본 제국은 만세일계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라고 명시되어 있고, 제3조에는 「천황은 신성하므로 침범하여서는 안된다」라고 되어 있다.
 
1889년2월11일에 이토가 만들었던 대일본 제국헌법을 천황이 발표하자, 그 때부터 일본 천황은 신이 되면서 모든 일본인의 머리 위에 군림하였고 그의 지위는 감히 그 누구도 넘겨다 볼 수 없게 되었다. 일본국민은 바로 천황이 국가 수호신이고 천황을 위해서 죽는 일이 순교이며, 그 이상의 영광된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천황제는 일본국민에게 있어서 바로 사상적 이데올로기이며 신앙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때에 한마디로 말하면 기독교는 계속되는 천황제 도전에 고민하면서 고군분투 자기변화와 자기규제를 하는 가운데, 스스로 천황제에 봉사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일본 개신교는 일본사회에 문학, 사회, 사상면으로 공헌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중에 기독교가 진리를 희생하여 일본의 국가주의 군국주의와 야합하여 살아 남았다는 타협의 사실은 양심적인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기독교에 기대를 걸었던 일본의 지식인들에게까지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아시아를 경악케 만들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온갖 비인간적인 작태를 보일 수 있었던 것도 교회의 타협과 결코 무관하지가 않다.
 
 전후의 일본 개신교는 이러한 영적전투로부터 결코 자유할 수는 없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하자, 1945년11월4일에 종교단체법이 폐지되고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었다. 그러자 물자 부족과 천황의 「인간선언」(지금까지는 천황이 신으로 추앙받음)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궁핍을 느꼈던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들었다.
 어느 외국인 선교사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일본은 완전히 기독교화 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또 다른 선교사는 본국에 편지를 쓰기를 「일본은 더 이상 선교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수년 내에 기독교는 일본의 종교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사단의 반격이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의 형태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수주 위적인 신도의 부흥으로 나타났다.
 
일본교회는 과거의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돌이켜 철저히 회개하여 하나님의 품에 안기기를 기대하신다. 일본교회는 이러한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2. KPM사역
 
 2.1 간략한 역사
  1972년 4월 고신총회 경기노회가 조병철 목사를 일본 교포선교사로 파송하여 동년 7월 29일 동경에 강동기독교회(현 에덴교회)를 개척하였다. 동년 9월에 고신총회가 조병철 목사를 총회선교사로 승인하였다. 이듬해 1973년 한국에서 표지현 전도사가 일본으로 건너가 이미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던 최창송 목사(부산 자성대교회 출신, 부인 권재남전도사)부부와 함께 카츠시카 교회를 개척하였다. 그 이후 1974년 표지현 전도사가 귀국하고 최창송목사 부부는 교회를 아다치구 지역으로 옮겨 희망 그리스교회로 개칭하였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1978년 3월에 재일 고신선교부를 발족한 것이 재일 고신선교부의 시작이다.
 
1982년 김소익 목사가 고신 교단에 가입함으로 재일 고신선교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이후 재일 고신선고부는 소강상태로 들어 갔으나 1985년 박영기 선교사(당시 아다치 아이노교회 개척)가 일본 선교사로 파송되어 옴으로 활력을 얻게 되고, 여기에 O.M.F 소속으로 들어왔던 변재창 선교사와 교포 교회의 중심적 교회였던 동경복음교회에 시무하고 있던 이청길 목사가 합세함으로 재일 고신선교부는 더욱 활력을 얻게 되었다.
 
그 이후 부산 삼일교회의 후원으로 시즈오카 삼일교회를 개척했던 이영수 목사가 김소익 목사의 소개로 1987년 재일 고신선교부에 가입하고, 동년 송기정 선교사가 고려측으로부터 파송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O.M.F 소속으로 일본에 파송된 류영기 선교사가 가입하였다. 당시의 재일 고신선교부는 간헐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친목 중심의 모임이었다.
 
그러다가 1992년 나달식, 이신형, 조광훈 , 김선식(고려측) 선교사가, 1993년
에는 임석윤 선교사가 한꺼번에 들어오게 됨으로 재일 고신선교부는 활력을 얻는 동시에 정기적인 모임으로 성장해 가게 되었다. 1995년 변재창 선교사가 사역문제 등으로 인하여 총회선교부로부터 탈퇴하게 되었고, 이영수 목사가 모임에 불참하게 됨으로 자연스레 탈퇴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영기 선교사가 일본 동맹교단에 소속 되어 동맹교단 선교정책에 따라 자원하여 동경에서 북해도로 이전하여1996년 신삿뽀로 성서교회를 개척하였다. 박영기 선교사가 개척했던 아다치 아이노교회는 김환 목사가 후임으로 맡게 되어 재일 고신선교부에 준회원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이후 2000년에 안 부자 선교사, 2001년에 김기태 선교사, 2005년에 박권출 선교사, 2007년에 김주영 선교사, 김주환 선교사, 한진숙 선교사가 각각 새로 가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에 조광훈 선교사가 재 파송을 받아 가입하게 되었다. 2010년에 배동렬 선교사, 황경수 선교사, 김경모 선교사, 2011년에 손만석 선교사, 2012년에 김영권 선교사, 2013년에 정남철 선교사, 2018년에 최재현 선교사, 박종관 선교사, 나요셉 선교사가 각각 새로 가입하게 되었다.
 
 현재 일본지역선교부는 총회 선교부의 정책에 따라 북 일본지부, 동일본지부, 서 일본지부로 나뉘어서 활동을 하고 있다. 총 23가정(단기 선교사 및 협력선교사 포함)이 사역하고 있으며 두 분의 은퇴선교사(임석윤, 류영기)가 있다.
 
2.2 현재사역
일본 사역의 특징은 교회목회 혹은 교회개척사역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일본지역선교부는 사역에 있어서 통일성과 다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본은 생각보다 넓은 곳이기 때문에, 3개지부로 나눌 필요가 있었고, 일본의 여러 교단(일본기독동맹교단과 일본기독개혁파교회 그리고 일본장로교회 등)과 협력사역 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개혁주의 교회를 건설하는 목표는 동일하지만, 사역형태는 다양 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교단과의 협력과 별도로 독립적으로 사역 하는 선교사들도 있다.
그리고, 사역 필요 분야, 팀 사역 포인트 및 선교사배치 포인트에 대해서는 다음 기록물에 상세하게 언급을 하려고 한다.
 
나가는 말
 
 사실 한일관계는 너무나 민감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하기가 어렵다. 일본에서 사역하는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한국방송과 일본방송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힘들 때가 많다. 일본에 대한 한국방송과 한국에 대한 일본방송은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관점에 치우쳐져 있기 때문에, 이를 듣는 선교사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일본 학교에서 일본식 교육을 받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치관의 혼란을 겪을 수가 있다. 그래서, 우리 선교사들은 신중을 기하면서 조심스럽게 일본의 역사, 문화, 종교 등을 배우며, 일본의 현 상황을 바르게 분별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일본 선교사들은 일본영혼의 구원을 위해 파송 받은 자들이다. 우리의 국권을 짓밟고, 우리에게 치욕을 안긴 일본인의 구원을 위해 우리는 이 곳으로 보냄을 받았다.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일본인을 사랑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우리의 생애를 바치고 있는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고 말씀하신 대로 원수와 같은 일본인을 사랑하며 함께 천국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처럼,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 워하는 것 입니다」라고 대답하면서, 묵묵히 일본인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한다.
 
 (글쓴이: 김기태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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